2009년 11월 07일
신의 선물, 제주도를 찾아서 - 김영갑 사진전 <지편성 너머의 꿈>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햇볕 짱짱한 한낮이 지나고, 선선한 기운을 머금은 밤바람이 옷깃을 스치니 스멀스멀하니 ‘제주도 푸른 밤’이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이제 여름이구나 싶어 생긴 자연스런 연상일지도 모르지만 ‘얽매이지 말고 떠나자’는 내용의 가사는 그 이상의 감상을 제공했다. 내일 있을 시험을 생각하며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질 때 유난히 큰 위로가 됐던 그 노래. 다른 어떤 곳도 아닌 ‘제주도’를 이야기하기에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제주도가 가진 이미지라는 게 그렇다. 아름다우면서도 친근한, 신비로우면서도 부담 없는. 야자수와 산호초가 있는 남태평양의 어느 곳을 더욱 동경할 수는 있으나, 돈과 시간이라는 부담을 벗어던지고 찾을 수 있는 제주도는 마음까지 편안한 진짜 쉼터로 여겨진다.
처음 김영갑의 전시 소식을 들었을 때 끌렸던 것도 제주도에 대한 그러한 이미지 때문이었다. 언제라도 갈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여 더 찾지 않았던 그 땅에 대해 알고 싶었다. 제주도 사진을 찍는 것에 생을 바친 작가였기에 더더욱 기대가 컸다.
제주도의 바람이 된 사진가
고(故)김영갑은 1985년 제주도에 정착해 2005년 루게릭병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20여 년 동안 제주도의 자연을 사진으로 담았다. 김영갑의 사진세계는 월남에 다녀온 형이 선물한 카메라와의 인연으로 시작되었다. 사진기 한 대가 작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 사진을 전공한 것도 아니지만, 그저 필름에 미쳐, 섬에 홀려 지내다 제주도의 바람이 되었다.
김영갑은 끼니 채울 돈으로 필름을 사고 들판의 당근과 고구마로 허기를 달래야 했을 만큼 물질적으로 부족했으나, 제주도의 자연을 사각의 카메라 앵글에 소유할 수 있었기에 마음만은 풍요로웠다. 마치 해탈의 경지에 이른 고독한 수도승처럼 욕심 부리지 않고 제주도의 길을 걸어간 삶이었다. 48년 짧은 생을 살았던 김영갑이 카메라 앵글을 통해 바라 본 세상은 분주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고스란히 찾아왔다.
너무나 사실적인,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이번 전시는 작고 후 서울에서 갖는 첫 번째 개인전으로, 제주도 중산간지대의 아름다움을 파노라마 사진으로 담은 미발표작들 40여점을 선보인다. 해발고도 200∼500m 정도의 중산간지대에서 찍은 사진들이 중심이 되다보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관광지로서의 제주도의 모습은 많지 않다. 달력이나 엽서에 나올법한 멋진 풍경의 사진을 기대했다면 예상과는 다름에 조금 당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영갑의 사진은 제주도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담고 있기에 더 깊은 매력을 발산한다. 신이 빚어놓은 처음의 상태를 보는듯한 풍경은 리조트 비치체어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산, 하늘, 나무가 있을 뿐이지만 제주도가 만들어내는 색채는 수만 가지다. 짙은 갈색의 대지는 봄이면 지천으로 널린 유채꽃의 노랑과 어우러지고, 여름이면 삼나무의 초록빛과 하나가 된다. 가을이면 솜털을 드러낸 황토색의 억새와 함께, 겨울이면 소복하게 내린 하얀 눈과 함께 어울리며 어느 계절하나 빠지지 않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40여점 대부분에 등장하는 하늘은 그 색깔이 다 제각각이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진한 푸름, 깊은 붉음은 드라마틱한 감탄의 경지를 넘어선 경건함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것에는 김영갑의 사진이 지닌 구도적 특징이 한몫 하고 있다.
정형화된 회화적 구도가 아닌 과감하게 화면중간을 가로지르는 수평 구조는 제주도의 광활한 지평선을 아름답게 담아내며, 특히 가로와 세로의 크기가 약 3대 1비율인 파노라마 사진은 하늘과 땅의 경계에 있는 나무나 오름 등의 주제를 더욱더 부각시킨다. 탁 트인 시야의 사진들을 보다보면 실제로 내 눈앞에 그 풍경이 펼쳐진 느낌이다. 마치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제주의 그 길 위에 내가 서있을 것만 같다.
거친 모습 그대로의 섬을 보여주는 전시지만, 관람 후 제주도에 관한 판타지는 더욱 커질지도 모른다. 이번 방학, 직접 그 땅을 밟아 보는 것을 어떨까.
“흙으로 돌아갈 줄을 아는 생명은 자기 몫의 삶에 열심이다. 만 가지 생명이 씨줄로 날줄로 어우러진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다. 천국보다 아름다운 세상에 살면서도 사람들은 또 다른 이어도를 꿈꾸며 살아갈 것이다.” - 김영갑 -
# by | 2009/11/07 09:39 | exhibition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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