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7일
엄마를 부탁해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오빠 집에 모여 있던 너의”
응? ‘너’가 나오는 순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속도를 늦추고 나머지 페이지를 훑어보니 ‘너’는 곳곳에 퍼져있다.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한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신경숙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서울로 상경한 노모가 길을 잃어 실종된 후 그의 가족들이 각각의 시선으로 엄마를 돌아보는 이야기다. 소설의 각 장은 큰 딸, 큰 아들, 남편 그리고 엄마 자신의 순서로 시점이 바뀌지만 전체적으로 서술어의 주체는 엄마이다. ‘나’라는 1인칭을 사용하는 사람은 엄마가 유일하다. 자기 자신을 버리고 누구의 무엇으로 살아가는 엄마들에 대한 보상과도 같다. 큰 딸은 ‘너’, 큰 아들은 ‘그’, 남편은 ‘당신’으로 칭하는데, 이런 식의 문체는 한 발짝 떨어져 이야기를 바라보게 하는 장치가 된다. 동시에 신 혹은 제3의 누군가가 내는 준엄한 심판의 목소리 같기도 하다.
소설은 빠른 속도로 독자를 빨아들인다. 엄마를 찾는 과정이 추리소설과 같이 펼쳐지고, 그 사이사이에 녹아든 과거의 이야기는 독자 자신과 엄마의 관계를 비추는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소설 속 딸, 아들이 엄마의 돌봄 안에서 자라던 때야 몇 십 년 전이지만, 시대와 환경을 관통하는 관계의 속성이 세밀하게 표현돼 감정 이입은 어렵지 않았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터져 나오던 자식들의 후회는 곧 나의 이야기가 되어 직선으로 가슴에 내리꽂힌다. 읽는 내내 ‘우리 엄마’에 대한 생각이 떠날 틈이 없다.
시점이 여럿이다 보니 엄마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나의 형제에 대한 이해 역시 깊어진다. ‘부모자식 간’이라는 같은 영역에 머물러도 나와 엄마가 맺는 관계와, 형제와 엄마가 맺는 관계는 완전히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내 몫을 뺏어가던 그에게는 또 다른 짐이 있음을, 그와 엄마 사이에는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내가 <엄마를 부탁해>를 집어든 건 이미 이 책이 100만부가 팔린 시점이었다. 고집스럽게 이 소설을 읽지 않았던 건 울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알고 엄마도 알고 세상도 아는 ‘나는 나쁜 딸’이라는 사실을 낱낱이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 와서는 잘 읽었다는 생각이다. 언젠가는 현실 속에서 직면해야 하는 것이었다. 소설 속의 딸보다도 못한, 엄마 허리에 팔을 감는 것조차 익숙지 않은 내게, 책속에서 엄마와 나의 관계를 헤집어 본 건 어쩌면 훨씬 수월한 일이었다. 엄마에게 이 책을 선물하는 것으로 고해성사를 대신할까 한다.
# by | 2009/11/07 09:29 | study room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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