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 펼쳐진 열정의 누드화 - 뮤지컬 <시카고>

 

30년이 지나도 시카고의 진화는 계속된다
 

1975년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신화적 존재였던 밥 파시(Bob Fasse)는 1920년대 격동기의 미국, 그 중에서도 농도 짙은 재즈음악과 어두운 갱 문화가 발달했던 시카고의 뒷골목에 음모과 살인이라는 소재를 결합시킨 작품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1996년 대대적인 리바이벌을 거쳐 1997년 연출상, 안무상, 남·여 주연상, 조명상 등 토니상(Tony Award)의 6개 부분을 석권한 작품은 현재까지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로 섹시한 악녀 록시와 벨마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시카고’다.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넘겨 오면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받아온 ‘시카고’는 수많은 사람을 통해 재탄생을 거듭했다. 2002년에 영화로 제작되었을 뿐 아니라, 현재까지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러시아, 스페인 등 세계 각지에서도 공연이 열리고 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본과 음악만을 수입해 우리나라 스텝들이 만든 작품으로 초연을 한 게 2000년.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브로드웨이 팀에게 전수를 받아 오리지널과 똑같은 내용과 형식으로 공연중이다. 특별히 이번 2009년 ‘시카고’에서는 초연 당시 벨마 역을 맡았던 인순이와 빌리 역을 맡았던 허준호가 컴백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시카고’의 매력은 무엇인지, 또한 이번 시즌 새롭게 더해진 매력은 무엇인지, 지난 6일 성남아트센터를 찾아 직접 확인해봤다.

 


가장 본연의 것으로 승부하는 작품

 

무대 전면에 등장한 악단의 연주와 함께 막이 오르며 공연은 시작된다. 악단은 보통 무대와 객석 사이에 숨어있기 마련이지만,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카고’에서만 볼 수 있는 배치다. 무대 위에서 재즈밴드를 이끌어가는 지휘자는 선고문을 읽거나 배우들과 간간이 대화하는 역할을 겸한다. 보조적인 수단으로 머무르지 않고 극의 안팎을 넘나들며 재미를 더하는 것이다.

요란한 무대장치 및 효과, 의상, 커다란 스케일 등 우리가 흔히 유명 뮤지컬과 함께 떠올리는 요소들이 ‘시카고’엔 없다. 하지만 사다리와 조명이 전부인 배경 덕분인지 그 속에 위치한 배우들에게로 좀 더 많은 관심과 집중이 쏟아진다. 법정과 감옥, 가정집이라는 상이한 공간이 자유자재로 전환되며 펼쳐질 수 있었던 것도 까맣고 텅 빈 무대가 주는 효과였으리라.

그러나 단출한 세팅 때문에 볼거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모두가 특별한 장식 하나 없는 검정 의상을 입고 있지만, 오히려 그 사이로 훤히 드러난 배우들의 몸은 관객의 눈을 끌기에 충분하다. 화려하고 절도 있는 안무와 관객의 탄성을 자아내는 배우들의 몸이 만났을 때 일으키는 시너지 효과는 엄청나다. 좋은 악기에서 나오는 좋은 연주를 듣는 느낌이랄까. 시카고라는 뮤지컬이 갖는 관능미는 배우들의 몸짓에서부터 출발하는 듯하다.

9년 만에 벨마 역으로 돌아온 인순이는 50세가 넘은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숨 가쁘게 돌아가는 안무를 완벽히 소화해낸다. 노래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하리. 우리나라에서 ‘All That Jazz’를 이만큼 안정되고 멋지게 부를 사람은 없을 것만 같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옥주현의 호연이다. 2007년부터 ‘시카고’를 시작, 2008년 이 작품으로 뮤지컬 어워즈 여우주연상을 탄 이후 세 번째 맡은 록시 역할이다. 몸에 익을 만큼 익었다고 하더라도 옥주현이 보여준 연기는 완벽에 가까웠다. 록시 특유의 백치미를 옥주현만의 방식으로 극대화한 것은 물론, 변화무쌍한 표정과 몸짓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제대로 표현해낸다. 브로드웨이에 내보내도 모자를 것 없는, 아니 오히려 자랑스러울 모습이다. 배우들의 호연에 두 시간 반의 긴 공연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뮤지컬 ‘시카고’는 누드화와 많이 닮아있다. 아름다운 배경 대신 여백이, 화려한 의상 대신 맨 몸이 캔버스를 차지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인간의 육체야말로 가장 깊고 미묘한 미적 존재임을 깨닫는다. ‘시카고’ 역시 다른 많은 요소들의 무게를 줄이고 배우들의 몸짓과 소리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사람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에 취하게 한다. 누드화처럼 가장 본연의 것으로 가장 강렬한 관능미를 뽐내는 뮤지컬. 앞으로도 계속 ‘시카고’의 행보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을 듯하다.  
 


 

by dawn | 2009/06/25 08:45 | performanc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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