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4월 27일
그녀의 색깔 백만스물한가지 - 레이첼 야마가타 내한공연
2006년 현빈, 김태희, 다니엘 헤니가 출연한 휴대폰 광고 ‘삼각관계’ 편에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음악을 기억하는지?
CF의 어두운 화면, 미묘한 분위기에 완벽하게 어울렸던 ‘Be Be Your Love'.
광고 덕에 유행처럼 번진 히트곡이 아니었다.
우울한 감정과 관조적인 자세가 공존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 끈 이 곡은 광고가 사라진 뒤에도
누군가의 미니홈피에서, 통화 연결음에서 꾸준히 들려왔다.

Rachael Yamagata in Seoul
‘Be Be Your Love'의 주인공인 이 뮤지션의 음반을 산 사람은 얼마나 될까? 생김새를 아는 사람은? 노래가 빅 히트를 쳤음에도 그녀에 대해 많은 걸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반 일본계라는 사실과 두 장의 앨범 <Happenstance>(2004), <Elephants...Teeth Sinking Into Heart>(2008)만이 알려졌을 뿐이니까. 베일에 싸인 그녀는 그 자신의 노래가 주는 느낌과 더불어 신비로운 존재로 남아있었고 한동안은 계속 그럴 것만 같았다.
그런데, 몇 달 전 레이첼 야마가타의 내한 소식이 들려왔다. ‘이 시대의 아름다운 싱어송라이터’ 시리즈의 일환으로 그녀가 서울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 갑작스런 소식에 그녀의 음악만큼이나 그녀를 알고 싶어 하던 사람들은 크게 들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오랜 기다림의 날이었을 지난 4월 17일, 공연이 열린 세종M씨어터로 향했다.
예상치 못했던,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세종M씨어터는 세종문화회관 내에 위치한 소극장으로, 뮤지션의 숨결과 음악을 온전히 느끼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랜드 피아노와 자그마한 드럼세트, 별다른 장식이 없는 무대는 공연에 대한 기대를 부풀리기에 충분했다. 조용히 등장한 레이첼, “안녕하세요”라는 짧은 인사와 함께 환호성이 나올 틈도 없이 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첫 곡은 2집의 타이틀인 Elephants. 청명한 피아노 소리와 함께 레이첼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모두들 얼어붙은 느낌이었다. 읊조리는 듯 부르는 노래였지만 공간을 장악하기에 충분한 힘이 있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드럼, 베이스, 일렉트릭 기타와 첼로 연주자 한 명이 함께 했다. 기존 앨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현악기 사운드를 소극장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가 관건이었으나, 간단한 밴드 구성만으로도 음반 못지않은 훌륭한 사운드가 연출되었다. 특히 첼로는 풍성한 울림을 유도하는 적절한 음향 효과로 일당백의 효과를 냈다.
긴 머리에 뱅 헤어, 까만 옷을 입은 레이첼은 몇 장의 사진을 통해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적어도 첫 곡까지는 그랬다. 이어지는 곡 Over and Over를 통해 음반 보다 훨씬 거칠고 탄탄한 목소리를 들려주더니, 이후로 예상 밖의 모습을 하나 둘 발산하기 시작했다. 일단 외모부터가 의외였다. 세 번째 곡 What if I leave를 위해 기타를 메고 무대 앞으로 나오자 다들 놀라는 눈치. 육중한 몸매와 둥근 얼굴은 음악의 음울함과는 거리가 먼 귀여운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세 번째 곡 What if I Leave를 진행하던 중 음향에 문제가 생기자 곡을 중단시키며 연주자에게 “Get Out!"이라고 외치는 모습은 악동에 가까웠다. 노래하는 목소리만큼이나 터프한 그녀의 모습에 더 많은 매력을 이들이 어디 한둘이랴.
하지만 이걸로 레이첼의 참 모습을 알았다고 하기는 어렵다. Faster, Worn Me Down, Accident, Letter Read 등 에너지 넘치는 넘버들을 통해서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Evan So, Meet Me By The Water 등을 통해서는 조용한 피아노 연주와 함께 달콤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Duet를 부를 때는 같이 부를 사람이 없다며 남자 목소리를 흉내 내 상대 파트까지 커버하니, 그 장난끼 또한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새침떼기 소녀와 괄괄한 여장부가 수없이 교차하는 가운데, 어떤 게 그녀의 진짜 모습인지 알아내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변화무쌍한 매력, 그것이 레이첼 야마가타였다.
앵콜곡으로 Be Be Your Love와 Reason Why가 이어진 뒤 공연은 막을 내렸다. 2시간 남짓, 15곡을 듣는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갔다. 직접 확인한 그녀는 익히 들어왔던 음악보다도 몇 배는 멋진 여인이었다. Fiona Apple, Tori Amos의 뒤를 잇는 뮤지션이 되지 않을까, 앞선 생각 같지만 단서를 제공했음은 분명하다.
아직 보여주지 않은 게 많은 것 같다. 다른 형태의 무대로 빨리 다시 찾아왔으면 한다.
# by | 2009/04/27 14:55 | performance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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