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 유섭 카쉬(Yousuf Karsh) 사진전

 

스페인이 배출한 세계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텅 빈 방에서 홀로 연주를 하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 미국 보스턴 박물관에 전시됐을 때였습니다. 한 노신사가 매일 같이 와서는 사진 앞에 오랜 동안 서 있다 가곤 했고, 호기심에 가득 찬 큐레이터는 어느 날 “선생님, 왜 항상 이 사진 앞에 매일 서 계시는가요?”하고 물었지요. 그러자 노신사가 나무라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용히 하시게. 지금 내가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이 안 보이는가!”
이 노신사와 같은 경험을 하고 싶은 분이 계신가요?
그렇다면 예술의 전당으로 향하세요. 저 사진이 지금 그곳에 있거든요.

 
카메라만큼이나 사람을 잘 알았던 인물 사진의 거장

공감각적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한, 위대한 사진을 남긴 주인공은 인물 사진의 거장 유섭 카쉬(Yousuf Karsh)입니다. 1908년 아르메니아 말딘에서 태어나 2002년 미국 보스턴에서 죽기까지, 그는 수많은 유명 인사들을 필름에 담아내지요. 윈스턴 처칠, 알버트 슈바이처, 헬렌 켈러, 알버트 아인슈타인, 조지 버나드 쇼, 피델 카스트로, 파블로 피카소, 어니스트 헤밍웨이, 오드리 햅번, 재클린 케네디, 마더 테레사 등 일생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려울 것 같은 역사적 인물들을 한 사람이 모두 촬영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지 않나요.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해서 찍은 사진들이 다 그 인물의 ‘대표 사진’이 됐다는 점입니다. 카쉬가 찍었다는 사실만 몰랐지, 이미 인터넷에서 많이 접한 사진들이기에 친숙한 느낌을 받으실 거예요. 인물 사진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낸 카쉬는 국제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유독 한국에서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보스턴 미술관에서 순회전을 마련했고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찾아오게 됐으니, 이 어찌 소중한 기회가 아닐 수 있겠습니까!





붉은 장막을 걷으며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진하고 어두운 벽과 은은한 조명이 주는 특별한 분위기는 곧바로 우리를 별(別)세계로 인도합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이 고즈넉이 들려오며, 사진 속 인물들을 만나는 여행의 시작을 알려주죠. 천천히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왜 카쉬가 인물사진에 있어서 독보적 위치에 오르게 됐는지, 무엇이 그의 사진을 특별하게 만들었는지 알게 됩니다. 카쉬가 직접 기록한 촬영 에피소드에 그 비밀이 담겨있는데요, 여기서 유독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말이 자주 발견되죠. 진정한 내면의 모습은 아주 짧은 순간, 즉 치켜 뜬 눈썹이나 놀란 표정 등과 같은 무의식적인 행동에서 드러난다고 믿었던 카쉬는 이를 잡아내기 위해 ‘대화’라는 자신만의 방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촬영을 하기 전 충분한 대화를 통해 긴장을 해제시키고, 편안해진 상대가 드러내는 진정한 내면의 모습을 남기는 거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사진은 하나의 장면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로 존재하게 됩니다. 핀란드의 위대한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사진 역시 그래요. 촬영 전 카쉬는 그에게 “캐나다 벌목 현장의 핀란드 노동자들이 당신의 ‘핀란디아’를 들으며 힘을 얻는다.”고 전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시벨리우스가 끓어오르는 감격으로 눈을 지그시 감았고 카쉬는 때를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누르죠. 그 감격은 사진을 보는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꼭 대화가 아니더라도 카쉬는 상대의 진면목을 끌어내는 데에 탁월한 재주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을 이끌던 영국 수상 처칠을 만났을 때에도 처칠의 입에 물려있던 시가를 뺏어내는 대범함을 보이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처칠이 그를 억세게 노려봤을 때 찰칵. 도전적이고 자신만만한 처칠의 모습을 제대로 이끌어 낸 이 작품의 제목은 ‘으르렁거리는 사자’입니다. 촬영 후 처칠이 “당신은 으르렁거리는 사자도 가만히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하는군요.”라고 말했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죠. 처칠도 인정한 능력의 사진가 앞에서 어느 누가 자신을 내맡기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이번 전시에서는 카쉬의 작품 70여점 외에도 국내 작가들의 인물사진을 함께 만나볼 수 있습니다. 임영균이 찍은 유섭 카쉬의 모습을 비롯, 안익태, 백남준, 서정주, 김혜수, 송강호, 전도연 등 한국을 대표하는 각계각층의 인물사진 20여점이 전시되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지요. 마지막으로 주말보다는 평일에 가보시라는 당부의 말씀! 인파에 휩쓸려서는 제대로 된 감상이 힘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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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wn | 2009/04/07 11:34 | exhibition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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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케이힐 at 2009/04/07 17:02
주말에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글 보고는 생각이 바뀌네요. 평일에라도 꼭 시간내서 가봐야겠습니다.
Commented by dawn at 2009/04/07 22:51
전시 기획자분께서 주말에는 관람객이 너무 몰린다면서 저 이야기를 꼭 기사에 써달라고 하시더라구요 ㅎㅎ 저 역시 평일날 찾을 것을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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