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와바라 시세이 사진전

 



작년 12월 13일을 시작으로 두 달에 가까운 여정을 거치며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사진전이 있다. 바로 일본인 보도 사진 전문가 구와바라 시세이의 전시다. 올림픽 공원 근처라는, ‘아트 밸리’로서의 정취를 느끼기는 힘든 곳에 위치하였지만, 사진전이 열리는 한미 사진 미술관에는 꾸준한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구와바라 시세이는 참으로 한국과 인연이 깊은 작가다. 일본의 중금속 공해 사건을 다룬 ‘미나마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로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으며 데뷔했지만, 사진작가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한 건 한국의 모습을 촬영하면서 부터이기 때문이다.  전쟁 직후의 모습부터 4.19와 5.16, 청계천 복원 사업과 지난 대선까지 - 그는 몇 십 년 동안 꾸준히 한국을 방문하면서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기록하였다. 단편적인 기록이 아닌, 전체적인 맥(脈)을 짚어나간 이러한 작업의 결과물들은 우리에게 너무나 귀한 존재다. 기술적으로나 상황적으로 한국인이 직접 다큐 사진을 남기기 힘들었던 시절을 구와바라 시세이가 메워 준 셈이니 정말 고마운 노릇이다.

베트남이나 러시아를 돌면서 보도 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그의 작품세계에는 언제나 한국이 중심에 서 있었다. 그의 반려자가 한국인이라는 사실 역시 그가 한국과 맺은 인연이 보통이 아님을 증명하는 듯하다.



옛날, 보통 사람들의 풍경
 
이번 전시는 그간 많은 출판물과 전시로 알려졌던 격동의 한국을 담은 모습이나, 일련의 사건을 다룬 보도 사진이 아닌 삶 깊은 곳까지 밀착하여 촬영한 우리 민중의 솔직한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선보인다. 우리가 경제개발을 목표로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 놓치고 지나간 서울 변두리나 농촌 구석구석의 모습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기록하였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그간 촬영한 북한 사진들도 전시된다. 일본인 작가이기에 가능한,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우리의 모습을 다른 이데올로기가 섞여 들어가지 않은 시선으로 본 사진들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실제로 구와바라 시세이의 사진을 통해 본 북한의 모습은 사뭇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사람’을 중심으로 찍었기 때문이다. 그간 봐 오던 황폐화 된 땅이나 시뻘건 궁서체의 문구가 아닌, ‘남포갑문의 안내양’이 함박웃음을 짓는 모습 축제에서 길거리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 등을 보다보면 ‘아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지’ 하는 생각이 든다. 촬영 대상은 주로 노동자, 안내원, 시민들, 농민들이다. ‘평안남도’라는 촬영지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면 사진만 보고는 남쪽인지 북쪽인지 모를 일이다.

사실 이 전시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는 순간은 생소한 북한의 모습보다도 서울과 부산의 옛 모습과 마주할 때다. 지금은 미끈한 도심 속 물길이 되었지만 그의 작품을 통해 확인한 1965년의 청계천은 정말 놀랍도록 남루하다. 엉성한 나무기둥을 받쳐놓고 세운 집들은 보기만 해도 불안하다. 한밤중에 자다가 집이 무너져 청계천으로 풍덩 빠지는 건 아닌지,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는 집이거늘 괜스레 걱정이 된다. 1988년 명동의 모습도 과연 올림픽을 개최한 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촌스럽고 후지다. 따지고 보면 20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왠지 내가 살았던 시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모든 사진이 흑백이기 때문일까? 흑백 사진 특유의 진하고 탁한 질감 때문인지, 1998년의 풍경도 아주 오래전의 것처럼 다가온다.

구와바라 시세이가 담은 사진 속 인물 중에는 유독 아이들이 많다. 촬영 년도를 살피고 따져보니 딱 우리 부모님 어렸을 때다. 초가집 마당에서 놀고 있는 코찔찔이 아이들 중에 정말 ‘나의 엄마, 아빠’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 웃음이 나는 한편으로, 초가집에서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기까지 그 격변의 세월과 궤를 같이한 부모님의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전시를 본 후에는 묘한 감상에 빠지게 된다. 단순히 옛 것을 보고 향수를 느껴서가 아니다. 구와바라 시세이의 작품에는 예의 보도사진이 가진 적나라함이나 날카로움 덜어지고, 관찰자 이상의 따뜻한 시선과 태도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by dawn | 2009/03/15 23:11 | exhibition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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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구와바라 시세이 사진전
토요일. 아이와 함께 해운대 고은사진미술관 국제사진가 기획전에 다녀왔다. 구와바라 시세이라는 일본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전시 제목이 이었다. 카페를 겸한 미술관은 지하부터 2층까지 전시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지하에는 구와바라 선생이 일본에서 미나마타병 환자를 찍은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2층에는 전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60년대부터 한국 현대사의 현장을 찍은 것들이었다. 1965년 서울에서 시위하는.....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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