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8일
공영방송의 존재가치
"모든 사람의 일은 그 누구의 일도 아니다." 모두에게 필요한 일을 자율에 맡겨 두면, 자발적으로 그 일을 하려는 개인은 없다는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행동하는 개인들에 의해 작동한다. 시각과 청각의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손님을 유혹하는 영리추구형 상업방송이 수행하지 못하는, 공공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방송의 존재가치는 여기에 있다. 상업방송의 단골손님군에서 배제된 사회적 소외계층을 배려하는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공공의 안녕을 위한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정론보도를 수행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역할이다. 건강한 사회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존재해야할 기능이다.
공영방송의 기능이 마비될 경우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면, 공영방송의 순기능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삼선(三選) 총리 베를로스코니는 자국 1위의 상업방송과 신문, 광고, 영화, 금융기업을 소유한 성공한 CEO 출신이다. 그는 2001년 총리 취임 직후 공영방송 라이(RAI)의 이사회를 측근들로 구성하여, 뉴스를 검열하고 여당 입장을 대변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협하던 'CEO 시절 비리'에 대한 면책법을 통과시키고 범죄소멸시효를 절반으로 줄였다.
공공의 안녕을 위한 정론보도의 기능을 마비당한 공영방송 라이는 베를로스코니 개인의 안녕을 위해 거짓 진실을 내보냈다. 통제된 언론으로부터 정제된 거짓 정보를 입력받은 시민들은 진실의 저편에서 면책법 통과 따위는 잊은 채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몰입했다. 이탈이아 사회는 과정의 정당성과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과정이야 어찌됐는 성공하면 된다는 인식을 베를로스코니를 통해 배우고 있다.
슬프게도, 2008년 대한민국에서 유사한 상황이 전대되고 있다. 성공한 CEO 출신의 대통령이 취임했고, 그는 방송을 장악하려 한다. 공공의 안녕을 목적으로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는 공영방송을 건전한 비판자로서 인정하지 않고, 장악해야할 대상으로 여긴다. 전임 사장의 해임에서 신임사장의 임명까지의 과정에서 절차적 하자와 청와대의 개입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현재까지의 상황은 집권자의 의도에 따라 일사천리로 공영방송이 장악당하고 있다. 신임 KBS 사장에 임명된 이병순씨는 취임사에서 "사회적 분란을 일으킨 프로그램의 폐지를 검토한다"며 공공의 안녕을 위한 정론 보도를 위협하는 발언을 했다.
87년 6월 항쟁을 기점으로 20년이 넘는 민주화의 진전이 민선독재의 횡포에 맥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다수결의 민주주의 원칙이 갖는 허점이 한없이 원망스럽다. 원더걸스와 빅뱅의 춤과 노래에 몰입하여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동안, 우리의 배는 거대한 빙산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정한 목적지를 향해 돌진하려는 선장에게, 이 길이 아니니 속도를 낮춰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는 조타수의 충고는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닌가? 빙산에 부딪치고 나서 선장의 측근들만 구명보트를 타게 될 것을 상상해 보면, 독단적 선장의 운항방식을 돌려 놓기 위해 일반실 승객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 by | 2009/11/18 12:30 | 트랙백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