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의 존재가치

"모든 사람의 일은 그 누구의 일도 아니다."  모두에게 필요한 일을 자율에 맡겨 두면, 자발적으로 그 일을 하려는 개인은 없다는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행동하는 개인들에 의해 작동한다.  시각과 청각의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손님을 유혹하는 영리추구형 상업방송이 수행하지 못하는, 공공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방송의 존재가치는 여기에 있다.  상업방송의 단골손님군에서 배제된 사회적 소외계층을 배려하는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공공의 안녕을 위한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정론보도를 수행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역할이다.  건강한 사회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존재해야할 기능이다.

 

공영방송의 기능이 마비될 경우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면, 공영방송의 순기능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삼선(三選) 총리 베를로스코니는 자국 1위의 상업방송과 신문, 광고, 영화, 금융기업을 소유한 성공한 CEO 출신이다.  그는 2001년 총리 취임 직후 공영방송 라이(RAI)의 이사회를 측근들로 구성하여, 뉴스를 검열하고 여당 입장을 대변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협하던 'CEO 시절 비리'에 대한 면책법을 통과시키고 범죄소멸시효를 절반으로 줄였다.

 

공공의 안녕을 위한 정론보도의 기능을 마비당한 공영방송 라이는 베를로스코니 개인의 안녕을 위해 거짓 진실을 내보냈다.  통제된 언론으로부터 정제된 거짓 정보를 입력받은 시민들은 진실의 저편에서 면책법 통과 따위는 잊은 채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몰입했다.  이탈이아 사회는 과정의 정당성과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과정이야 어찌됐는 성공하면 된다는 인식을 베를로스코니를 통해 배우고 있다.

 

슬프게도, 2008년 대한민국에서 유사한 상황이 전대되고 있다.  성공한 CEO 출신의 대통령이 취임했고, 그는 방송을 장악하려 한다.  공공의 안녕을 목적으로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는 공영방송을 건전한 비판자로서 인정하지 않고, 장악해야할 대상으로 여긴다.  전임 사장의 해임에서 신임사장의 임명까지의 과정에서 절차적 하자와 청와대의 개입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현재까지의 상황은 집권자의 의도에 따라 일사천리로 공영방송이 장악당하고 있다.  신임 KBS 사장에 임명된 이병순씨는 취임사에서 "사회적 분란을 일으킨 프로그램의 폐지를 검토한다"며 공공의 안녕을 위한 정론 보도를 위협하는 발언을 했다.

 

87년 6월 항쟁을 기점으로 20년이 넘는 민주화의 진전이 민선독재의 횡포에 맥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다수결의 민주주의 원칙이 갖는 허점이 한없이 원망스럽다.  원더걸스와 빅뱅의 춤과 노래에 몰입하여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동안, 우리의 배는 거대한 빙산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정한 목적지를 향해 돌진하려는 선장에게, 이 길이 아니니 속도를 낮춰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는 조타수의 충고는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닌가?  빙산에 부딪치고 나서 선장의 측근들만 구명보트를 타게 될 것을 상상해 보면, 독단적 선장의 운항방식을 돌려 놓기 위해 일반실 승객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by dawn | 2009/11/18 12:30 | 트랙백 | 덧글(0)

신의 선물, 제주도를 찾아서 - 김영갑 사진전 <지편성 너머의 꿈>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햇볕 짱짱한 한낮이 지나고, 선선한 기운을 머금은 밤바람이 옷깃을 스치니 스멀스멀하니 ‘제주도 푸른 밤’이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이제 여름이구나 싶어 생긴 자연스런 연상일지도 모르지만 ‘얽매이지 말고 떠나자’는 내용의 가사는 그 이상의 감상을 제공했다. 내일 있을 시험을 생각하며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질 때 유난히 큰 위로가 됐던 그 노래. 다른 어떤 곳도 아닌 ‘제주도’를 이야기하기에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제주도가 가진 이미지라는 게 그렇다. 아름다우면서도 친근한, 신비로우면서도 부담 없는. 야자수와 산호초가 있는 남태평양의 어느 곳을 더욱 동경할 수는 있으나, 돈과 시간이라는 부담을 벗어던지고 찾을 수 있는 제주도는 마음까지 편안한 진짜 쉼터로 여겨진다.

처음 김영갑의 전시 소식을 들었을 때 끌렸던 것도 제주도에 대한 그러한 이미지 때문이었다. 언제라도 갈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여 더 찾지 않았던 그 땅에 대해 알고 싶었다. 제주도 사진을 찍는 것에 생을 바친 작가였기에 더더욱 기대가 컸다.

 

제주도의 바람이 된 사진가

고(故)김영갑은 1985년 제주도에 정착해 2005년 루게릭병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20여 년 동안 제주도의 자연을 사진으로 담았다. 김영갑의 사진세계는 월남에 다녀온 형이 선물한 카메라와의 인연으로 시작되었다. 사진기 한 대가 작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 사진을 전공한 것도 아니지만, 그저 필름에 미쳐, 섬에 홀려 지내다 제주도의 바람이 되었다.

김영갑은 끼니 채울 돈으로 필름을 사고 들판의 당근과 고구마로 허기를 달래야 했을 만큼 물질적으로 부족했으나, 제주도의 자연을 사각의 카메라 앵글에 소유할 수 있었기에 마음만은 풍요로웠다. 마치 해탈의 경지에 이른 고독한 수도승처럼 욕심 부리지 않고 제주도의 길을 걸어간 삶이었다. 48년 짧은 생을 살았던 김영갑이 카메라 앵글을 통해 바라 본 세상은 분주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고스란히 찾아왔다.

 

너무나 사실적인,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이번 전시는 작고 후 서울에서 갖는 첫 번째 개인전으로, 제주도 중산간지대의 아름다움을 파노라마 사진으로 담은 미발표작들 40여점을 선보인다. 해발고도 200∼500m 정도의 중산간지대에서 찍은 사진들이 중심이 되다보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관광지로서의 제주도의 모습은 많지 않다. 달력이나 엽서에 나올법한 멋진 풍경의 사진을 기대했다면 예상과는 다름에 조금 당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영갑의 사진은 제주도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담고 있기에 더 깊은 매력을 발산한다. 신이 빚어놓은 처음의 상태를 보는듯한 풍경은 리조트 비치체어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산, 하늘, 나무가 있을 뿐이지만 제주도가 만들어내는 색채는 수만 가지다. 짙은 갈색의 대지는 봄이면 지천으로 널린 유채꽃의 노랑과 어우러지고, 여름이면 삼나무의 초록빛과 하나가 된다. 가을이면 솜털을 드러낸 황토색의 억새와 함께, 겨울이면 소복하게 내린 하얀 눈과 함께 어울리며 어느 계절하나 빠지지 않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40여점 대부분에 등장하는 하늘은 그 색깔이 다 제각각이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진한 푸름, 깊은 붉음은 드라마틱한 감탄의 경지를 넘어선 경건함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것에는 김영갑의 사진이 지닌 구도적 특징이 한몫 하고 있다.

정형화된 회화적 구도가 아닌 과감하게 화면중간을 가로지르는 수평 구조는 제주도의 광활한 지평선을 아름답게 담아내며, 특히 가로와 세로의 크기가 약 3대 1비율인 파노라마 사진은 하늘과 땅의 경계에 있는 나무나 오름 등의 주제를 더욱더 부각시킨다. 탁 트인 시야의 사진들을 보다보면 실제로 내 눈앞에 그 풍경이 펼쳐진 느낌이다. 마치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제주의 그 길 위에 내가 서있을 것만 같다.

거친 모습 그대로의 섬을 보여주는 전시지만, 관람 후 제주도에 관한 판타지는 더욱 커질지도 모른다. 이번 방학, 직접 그 땅을 밟아 보는 것을 어떨까.

 

“흙으로 돌아갈 줄을 아는 생명은 자기 몫의 삶에 열심이다. 만 가지 생명이 씨줄로 날줄로 어우러진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다. 천국보다 아름다운 세상에 살면서도 사람들은 또 다른 이어도를 꿈꾸며 살아갈 것이다.” - 김영갑 -

 

 

by dawn | 2009/11/07 09:39 | exhibition | 트랙백 | 덧글(0)

엄마를 부탁해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오빠 집에 모여 있던 너의”
응? ‘너’가 나오는 순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속도를 늦추고 나머지 페이지를 훑어보니 ‘너’는 곳곳에 퍼져있다.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한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신경숙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서울로 상경한 노모가 길을 잃어 실종된 후 그의 가족들이 각각의 시선으로 엄마를 돌아보는 이야기다. 소설의 각 장은 큰 딸, 큰 아들, 남편 그리고 엄마 자신의 순서로 시점이 바뀌지만 전체적으로 서술어의 주체는 엄마이다. ‘나’라는 1인칭을 사용하는 사람은 엄마가 유일하다. 자기 자신을 버리고 누구의 무엇으로 살아가는 엄마들에 대한 보상과도 같다. 큰 딸은 ‘너’, 큰 아들은 ‘그’, 남편은 ‘당신’으로 칭하는데, 이런 식의 문체는 한 발짝 떨어져 이야기를 바라보게 하는 장치가 된다. 동시에 신 혹은 제3의 누군가가 내는 준엄한 심판의 목소리 같기도 하다.

소설은 빠른 속도로 독자를 빨아들인다. 엄마를 찾는 과정이 추리소설과 같이 펼쳐지고, 그 사이사이에 녹아든 과거의 이야기는 독자 자신과 엄마의 관계를 비추는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소설 속 딸, 아들이 엄마의 돌봄 안에서 자라던 때야 몇 십 년 전이지만, 시대와 환경을 관통하는 관계의 속성이 세밀하게 표현돼 감정 이입은 어렵지 않았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터져 나오던 자식들의 후회는 곧 나의 이야기가 되어 직선으로 가슴에 내리꽂힌다. 읽는 내내 ‘우리 엄마’에 대한 생각이 떠날 틈이 없다.

시점이 여럿이다 보니 엄마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나의 형제에 대한 이해 역시 깊어진다. ‘부모자식 간’이라는 같은 영역에 머물러도 나와 엄마가 맺는 관계와, 형제와 엄마가 맺는 관계는 완전히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내 몫을 뺏어가던 그에게는 또 다른 짐이 있음을, 그와 엄마 사이에는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내가 <엄마를 부탁해>를 집어든 건 이미 이 책이 100만부가 팔린 시점이었다. 고집스럽게 이 소설을 읽지 않았던 건 울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알고 엄마도 알고 세상도 아는 ‘나는 나쁜 딸’이라는 사실을 낱낱이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 와서는 잘 읽었다는 생각이다. 언젠가는 현실 속에서 직면해야 하는 것이었다. 소설 속의 딸보다도 못한, 엄마 허리에 팔을 감는 것조차 익숙지 않은 내게, 책속에서 엄마와 나의 관계를 헤집어 본 건 어쩌면 훨씬 수월한 일이었다. 엄마에게 이 책을 선물하는 것으로 고해성사를 대신할까 한다.





by dawn | 2009/11/07 09:29 | study room | 트랙백 | 덧글(0)

무대 위에 펼쳐진 열정의 누드화 - 뮤지컬 <시카고>

 

30년이 지나도 시카고의 진화는 계속된다
 

1975년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신화적 존재였던 밥 파시(Bob Fasse)는 1920년대 격동기의 미국, 그 중에서도 농도 짙은 재즈음악과 어두운 갱 문화가 발달했던 시카고의 뒷골목에 음모과 살인이라는 소재를 결합시킨 작품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1996년 대대적인 리바이벌을 거쳐 1997년 연출상, 안무상, 남·여 주연상, 조명상 등 토니상(Tony Award)의 6개 부분을 석권한 작품은 현재까지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로 섹시한 악녀 록시와 벨마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시카고’다.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넘겨 오면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받아온 ‘시카고’는 수많은 사람을 통해 재탄생을 거듭했다. 2002년에 영화로 제작되었을 뿐 아니라, 현재까지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러시아, 스페인 등 세계 각지에서도 공연이 열리고 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본과 음악만을 수입해 우리나라 스텝들이 만든 작품으로 초연을 한 게 2000년.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브로드웨이 팀에게 전수를 받아 오리지널과 똑같은 내용과 형식으로 공연중이다. 특별히 이번 2009년 ‘시카고’에서는 초연 당시 벨마 역을 맡았던 인순이와 빌리 역을 맡았던 허준호가 컴백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시카고’의 매력은 무엇인지, 또한 이번 시즌 새롭게 더해진 매력은 무엇인지, 지난 6일 성남아트센터를 찾아 직접 확인해봤다.

 


가장 본연의 것으로 승부하는 작품

 

무대 전면에 등장한 악단의 연주와 함께 막이 오르며 공연은 시작된다. 악단은 보통 무대와 객석 사이에 숨어있기 마련이지만,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카고’에서만 볼 수 있는 배치다. 무대 위에서 재즈밴드를 이끌어가는 지휘자는 선고문을 읽거나 배우들과 간간이 대화하는 역할을 겸한다. 보조적인 수단으로 머무르지 않고 극의 안팎을 넘나들며 재미를 더하는 것이다.

요란한 무대장치 및 효과, 의상, 커다란 스케일 등 우리가 흔히 유명 뮤지컬과 함께 떠올리는 요소들이 ‘시카고’엔 없다. 하지만 사다리와 조명이 전부인 배경 덕분인지 그 속에 위치한 배우들에게로 좀 더 많은 관심과 집중이 쏟아진다. 법정과 감옥, 가정집이라는 상이한 공간이 자유자재로 전환되며 펼쳐질 수 있었던 것도 까맣고 텅 빈 무대가 주는 효과였으리라.

그러나 단출한 세팅 때문에 볼거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모두가 특별한 장식 하나 없는 검정 의상을 입고 있지만, 오히려 그 사이로 훤히 드러난 배우들의 몸은 관객의 눈을 끌기에 충분하다. 화려하고 절도 있는 안무와 관객의 탄성을 자아내는 배우들의 몸이 만났을 때 일으키는 시너지 효과는 엄청나다. 좋은 악기에서 나오는 좋은 연주를 듣는 느낌이랄까. 시카고라는 뮤지컬이 갖는 관능미는 배우들의 몸짓에서부터 출발하는 듯하다.

9년 만에 벨마 역으로 돌아온 인순이는 50세가 넘은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숨 가쁘게 돌아가는 안무를 완벽히 소화해낸다. 노래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하리. 우리나라에서 ‘All That Jazz’를 이만큼 안정되고 멋지게 부를 사람은 없을 것만 같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옥주현의 호연이다. 2007년부터 ‘시카고’를 시작, 2008년 이 작품으로 뮤지컬 어워즈 여우주연상을 탄 이후 세 번째 맡은 록시 역할이다. 몸에 익을 만큼 익었다고 하더라도 옥주현이 보여준 연기는 완벽에 가까웠다. 록시 특유의 백치미를 옥주현만의 방식으로 극대화한 것은 물론, 변화무쌍한 표정과 몸짓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제대로 표현해낸다. 브로드웨이에 내보내도 모자를 것 없는, 아니 오히려 자랑스러울 모습이다. 배우들의 호연에 두 시간 반의 긴 공연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뮤지컬 ‘시카고’는 누드화와 많이 닮아있다. 아름다운 배경 대신 여백이, 화려한 의상 대신 맨 몸이 캔버스를 차지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인간의 육체야말로 가장 깊고 미묘한 미적 존재임을 깨닫는다. ‘시카고’ 역시 다른 많은 요소들의 무게를 줄이고 배우들의 몸짓과 소리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사람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에 취하게 한다. 누드화처럼 가장 본연의 것으로 가장 강렬한 관능미를 뽐내는 뮤지컬. 앞으로도 계속 ‘시카고’의 행보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을 듯하다.  
 


 

by dawn | 2009/06/25 08:45 | performance | 트랙백 | 덧글(0)

Zee Avi ‘Zee Avi’

유튜브 스타의 달콤한 데뷔







“입을 옷이 없어!”라는 말만큼이나 버릇처럼 나오는 말이 “들을 음악이 없어!”인 것 같아요. TV나 라디오에서 들리는 음악은 만날 똑같고, 먹힌다 싶은 스타일만 줄곧 나오고. 뭔가 신선한 게 필요해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빌보드 차트의 Independent Music 코너를 찾아봤지요. 그곳에는 왠지 미국 펑크 밴드만이 있을 것 같다고요? 노노노!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면 말레이시아 출신의 여가수 지 아비(Zee Avi)를 만날 수 없었겠죠.

무한한 재능을 지닌 신예 싱어송라이터 지 아비는 말레이시아 동부의 아름다운 섬 보르네오에서 태어났습니다. 12살 때 말레이시아의 수도인 쿠알라룸푸르로 이주한 그녀는 17세부터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기타를 독학하기 시작했죠. 비교적 여유로운 가정환경 속에서 지냈던 그녀는 변호사가 되길 원하는 부모님의 기대를 뒤로 하고 런던으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러 떠났고, 말레이시아로 돌아와서는 본격적인 밴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지 아비의 데뷔 과정은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UCC의 전성기인 요즘, 시대를 잘 타고 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죠. 작곡에 한창 몰두하던 시절, 지 아비는 자신의 연주 장면을 찍어 ‘Kokokaina’라는 이름으로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그것을 본 영국의 싱어송라이터인 크리스 로울리가 극찬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남겼고, 동영상은 입소문을 타며 크게 번지게 됐죠. 그 무렵 올린 두 번째 올린 동영상 ‘No Christmas For Me’는 관심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3000통이 넘는 이메일을 받았고, 그 중에는 음반 계약을 제안하는 내용도 상당수였다고 해요. 결국 지 아비는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매니저 이언 몬톤에게 발탁됐고, 그녀의 데뷔 앨범은 이언 몬톤이 세운 모노톤 레이블과 잭 존슨이 설립한 브러쉬파이어의 첫 합작 프로젝트로 발매됩니다.

드라마같은 데뷔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정도로 그녀의 음악은 매력적이며 대중적입니다. 포크를 바탕으로 하는 기타 중심의 음악은 편안하고도 담백한 사운드를 들려주죠. 강렬한 자극으로 뇌리에 박히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결코 심심한 스타일도 아니에요. 가장 귀를 잡아끄는 건 바로 지 아비의 음색인데, 언뜻 들으면 노라 존스를 연상케 하지만 그보다는 무게가 덜어진 좀 더 밝은 톤을 가지고 있죠.

20대 초반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숙하게 밀고 당기기를 하는 노래 실력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앨범 수록곡 중 몇 곡은 기타가 아닌 우쿨렐레로 연주를 하는데요, 악기 특유의 사운드에 말레이시아라는 이미지가 합쳐진 결과인지 더운 계절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든답니다. 그늘 아래 누워 지 아비의 음악과 함께 흥얼거리는 시간, 생각만 해도 벌써 기분이 좋아지네요. 
 


by dawn | 2009/06/25 08:31 | phonograph record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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